← 스토리 목록으로

제 23장

다이어리 안의 필체는 낯익었다. 할아버지의 편지에 쓰여 있던 바로 그 필체였다. 신중하고 의도적인 글씨로 가득 채워진 페이지들. 다양한 메모와 관찰 기록, 그리고 복잡한 도면들.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에는 단 한 문장이 힘주어 적혀 있었다. “관찰자도 설계의 일부다. (The observer is part of the design.)”

이런 류의 설계도가 존재한다면, 가장 오래된 지식이 모이는 도서관에 무언가 흔적이 있을 터였다. 숀은 나를 도서관 지하,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구역으로 안내했다. “이 문서들은 도서관이 처음 세워질 때부터 함께 온 것들이야. 아무도 이 문자를 해독하지 못해서 그냥 이곳에 보관해 두었지.”

겹겹이 쌓인 고대의 문건들은 빼곡하고도 정교한 문장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중요한 부분들이 모조리 검게 덧칠해져 있었다.(Redacted).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것이다. “삭제된 부분들을 복원할 수 있을까?” 내 질문에 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워진 기록을 복원하는 건… 까다로운 일이야. 하지만 정보라는 건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야. 우주 어딘가에 떠돌고 있지. 기록자인 조이라면 아마 그것들을 모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

문서들을 보이드의 조이에게 보여주었다. 조이는 손을 대지도 않고 검게 칠해진 부분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복원할 수는 있어. 하지만 복원엔 항상 대가가 따르지. 무언가를 되돌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동일한 양을 지불해야 해. 그것이 우주의 규칙이야. 당신의 기억을 담고 있는 압축된 무언가가 필요해.” 그가 요구한 것은 스텔라 에센스(Stella Essence)였다. “스텔라 에센스는 단순한 별빛의 정수가 아니지. 그걸 모을 때마다 당신이 겪은 경험이 그 안에 압축되는 거야. 스텔라 에센스 하나가 당신의 기록의 파편인 셈이지. 열 병. 그게 삭제된 기록을 되살릴 값이야.”

열 병의 스텔라 에센스를 찾아서 들이밀자, 조이는 지체 없이 복원을 시작했다. 복원이 끝난 후 그는 한동안 침묵 속에서 문서를 정독했다. “이건 설계도야. 차원을 설계하기 위한 청사진.” 조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당신이 이 설계도 안에 들어있어. 핵심 컴포넌트(Key component)로 치밀하게 명시되어서 말이야.” 그는 잠시 나를 쏘아보다가 물었다. “당신의 할아버지… 크로노스에 대한 선명한 기억이 있긴 한가?” 나는 퍼뜩 머릿속을 뒤져보았다. 뚜렷해야 할 기억들이 마치 안개 낀 것처럼 희미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명확한 형상이나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텅 빈 공백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이는 복원된 설계도를 내게 건넸다. 원래부터 내 것이라는 것을 안다는 듯한 손길이었다. “가져가. 이건 당신이 알아야 해.” 천천히 문서를 펼쳐보았다. 무수히 많은 데이터 위로, 중심에 굵게 쓰인 단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플레이어 (Player).’ 그것은 이 세계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굴러가기 위해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했던 독립 변수(Variable), 필수적인 컴포넌트로 기록되어 있었다. 🌕